분서갱유 뜻과 유래
분서갱유 뜻과 유래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진시황 때 일어났던 일로 책을 불사르고 유생들을 생매장한 사건을 말한다.
원래 분서와 갱유는 다른 사건이지만 통상 분서갱유로 통칭한다.
책을 불사르는 분서는 BC213년에 발생한 사건이고, 유생들을 생매장한 갱유는 1년 뒤인 BC211년 일어난 일이다.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과거의 봉건제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제인 군현제를 실시하였다.
군현제는 진나라의 천하통일에 콘 공을 세운 승상 이사의 제안이었다.
이사는 순자, 한비자의 영향을 받아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하는 군현제 신봉자였다.
봉건제는 고대 중국의 최초의 나라다운 나라라 할 수 있는 주나라가 실시한 제도로,
모든 국토를 황족과 공신들에게 나누어주어 관리하게 하고 그 제후들로 하여금 황실을 받들게 하는 제도였다.
분서(焚書)의 발단은 순우월이라는 자가 과거의 봉건제를 주장하며 군현제를 비판한 데서 시작되었다.
군현제로는 황실를 무궁히 보전하기 어려우니 황실의 보전을 위해 봉건제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공신들과 황실의 황족들을 제후로 삼아 땅을 나누어주어 다스리게 하고 황실을 보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이사에 반박했다.
군현제는 법령이 한 곳에서 발령되어 천하가 안정되지만,
봉건제는 제후들이 전쟁을 자주 일으켜 천하의 질서가 잡힐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군현제를 비판하는 것은 옛날의 책으로 배운 선비들 때문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책을 제외한 모든 책은 없애버려야 한다고 했다.
즉 의약서, 복서, 농서 그리고 진나라 역사서 외 모든 책들을 불태워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진시황은 이사의 말에 따라 모든 책을 불사르니 이것이 분서(焚書) 사건이다.
갱유(坑儒)는 유생들을 생매장 일인데 그 연유가 진시황이 불로장생약을 구하는데 있다.
노생, 후생이라는 자거 불로장생약을 구하려 떠났으냐 구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워 제물을 훔쳐 도망을 쳤다.
그러면서 불로장생약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은 황제의 권세욕과 교만 때문이라고 황제를 비방했다.
그러자 함양에 있는 많은 자들이 이에 동조하여 황제를 비방하기 시작했고,
황제를 비방한 자들을 잡아들이니 대부분 유생들이었다.
진시황은 이들을 생매장을 해버리니 그 수가 460명이었다.
공교롭게도 분서사건에도 유생들이 연류되었는데, 황제를 비방한 자들도 유생들이었다.
분서로 인해 유생들이 진시황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