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달걀 세우기, 발상의 전환

Posted by 헤드린
2018. 1. 30. 13:33 일상/일상상식


콜럼버스 달걀 세우기, 발상의 전환

 

발상의 전환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것이 콜럼버스의 달걀세우기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를 축하해주기 위해 파티가 열였다.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은 콜럼버스를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콜럼버스를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신대륙을 발견한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콜럼버스의 업적을 폄하했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사람들을 향해 누가 달걀을 세워볼 수 있겠냐고 물으면서 세울 수 있다면 한 번 세워보라고 했다.

사람들은 달걀을 세우려고 애를 썼지만 누구도 달걀을 세울 수는 없었다.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하자 콜럼버스는 달걀 밑동을 살짝 깨트려 탁자 위에 반드시 세웠다.

 

 

콜럼버스를 헐뜯는 사람들은 이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여전히 콜럼버스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콜럼버스는 말했다.

누구를 따라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처음 시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콜럼버스의 기발한 발상이 달걀은 세울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려버렸다.

그러나 나는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를 발상의 전환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공감하지는 않는다.

 

 

발상의 전환이란 공정관념을 탈피하는데 그치지 않고,

가치를 증가하거나 또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데 기여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콜럼버스는 달걀의 가치를 훼손해버렸다.

차라리 달걀을 삶아서 조금 깨트려 세웠다면 공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달걀을 세울 수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춘분날이면 날계란을 세우는 풍속이 있는데, 달걀을 세우면 행운이 따른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달걀을 똑바로 세운다고 한다.

또한 기네스북 기록에는 12시간 동안에 439개의 달걀을 세운 사람이 있다고 한다.



법과 공중도덕, 상류층과 서민층 누가 잘 지킬까?

Posted by 헤드린
2018. 1. 27. 12:30 일상/일상상식


법과 공중도덕, 상류층과 서민층 누가 잘 지킬까?

 

상류층과 서민층 중 공중도덕이나 법을 누가 더 잘 지킬까?

상류층의 사람들이 잘 지킬까, 서민들이 더 잘 지킬까?

 

미국의 어느 학자가 실험을 했다고 한다.

서민층과 상류층으로 분리해서 누가 법과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지를.

 

서민들보다 상류층이 아무래도 의식수준이나 준법정신이 높아,

공중도덕심도 더 강하고 법도 더 잘 지킬 것 생각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서민들이 상류층보다 더 잘 지키더란다.

 

 

서민들이 법을 더 잘 지키는 이유는,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을 받느냐, 아니면 처벌을 면할 수 있느냐에 있었다고 한다.

 

서민들은 법을 어기면 처벌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법을 잘 지키며,

권력이나 돈이 많은 상류층 사람들들은 법을 어겨도 처벌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민들보다 법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벌을 받느냐 면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라니,

결국 법을 지키는 데는 의식수준 같은 것은 별 상관이 없는가 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더니,

이 말은 다른 나라에서도 통용되는 말인가 보다.



분서갱유 뜻과 유래

Posted by 헤드린
2018. 1. 25. 12:59 일상/일상상식


분서갱유 뜻과 유래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진시황 때 일어났던 일로 책을 불사르고 유생들을 생매장한 사건을 말한다.

원래 분서와 갱유는 다른 사건이지만 통상 분서갱유로 통칭한다.

책을 불사르는 분서는 BC213년에 발생한 사건이고, 유생들을 생매장한 갱유는 1년 뒤인 BC211년 일어난 일이다.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과거의 봉건제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제인 군현제를 실시하였다.

군현제는 진나라의 천하통일에 콘 공을 세운 승상 이사의 제안이었다.

이사는 순자, 한비자의 영향을 받아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하는 군현제 신봉자였다.

 

봉건제는 고대 중국의 최초의 나라다운 나라라 할 수 있는 주나라가 실시한 제도로,

모든 국토를 황족과 공신들에게 나누어주어 관리하게 하고 그 제후들로 하여금 황실을 받들게 하는 제도였다.

 

 

분서()의 발단은 순우월이라는 자가 과거의 봉건제를 주장하며 군현제를 비판한 데서 시작되었다.

군현제로는 황실를 무궁히 보전하기 어려우니 황실의 보전을 위해 봉건제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공신들과 황실의 황족들을 제후로 삼아 땅을 나누어주어 다스리게 하고 황실을 보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이사에 반박했다.

군현제는 법령이 한 곳에서 발령되어 천하가 안정되지만,

봉건제는 제후들이 전쟁을 자주 일으켜 천하의 질서가 잡힐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군현제를 비판하는 것은 옛날의 책으로 배운 선비들 때문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책을 제외한 모든 책은 없애버려야 한다고 했다.

즉 의약서, 복서, 농서 그리고 진나라 역사서 외 모든 책들을 불태워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진시황은 이사의 말에 따라 모든 책을 불사르니 이것이 분서(焚書) 사건이다.

 

 

갱유(坑儒)는 유생들을 생매장 일인데 그 연유가 진시황이 불로장생약을 구하는데 있다.

노생, 후생이라는 자거 불로장생약을 구하려 떠났으냐 구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워 제물을 훔쳐 도망을 쳤다.

 

그러면서 불로장생약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은 황제의 권세욕과 교만 때문이라고 황제를 비방했다.

그러자 함양에 있는 많은 자들이 이에 동조하여 황제를 비방하기 시작했고,

황제를 비방한 자들을 잡아들이니 대부분 유생들이었다.

진시황은 이들을 생매장을 해버리니 그 수가 460명이었다.

 

공교롭게도 분서사건에도 유생들이 연류되었는데, 황제를 비방한 자들도 유생들이었다.

분서로 인해 유생들이 진시황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